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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구의 증명 - 최진영 작가 (잊지 않겠다는 다짐, 그것이 사랑이었다.)

다우닝:) 2025. 5. 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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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 증명 - 잊지 않겠다는 다짐, 그것이 사랑이었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작가는 대체 뭘 이야기하는 거지?’
하는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이야기는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었고, 문장은 설명이라기보다 감정의 조각들처럼 내게 다가왔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혼란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서야 비로소,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들이 조금씩 마음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 먹먹한 울림이 내 안에서 조용히 파도가 되어 일었다.

 

죽음과 상실, 폭력이라는 자극적인 사건들이 이어지지만,
소설은 그 어느 장면에서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고 단단한 언어로 모든 고통을 마주하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오히려 더 아프고, 더 고통스러웠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고, 그 사람을 이해하려 애쓰지만 결국 닿지 못했던 기억.
그리고 그 뒤에 남겨진 사람의 고요하고도 고통스러운 싸움.
나는 이 소설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더 읽다 보니, 그것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
‘사랑했던 사람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그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책 속의 인물들은 아직 어른이 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고,

그들이 감당하기엔 벅찬 현실을 살아가야 했다.
나는 그게 참 화가 났다.

이 아이들은 왜 이렇게 힘든 삶을 살아야 했을까.
그리고 그 고단한 삶을 견디는 방법을,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을까.
사랑한다고 말해도, 위로한다고 말해도, 정작 그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외로움과 상처는 더욱 조용하게, 그러나 깊숙이 스며든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내내 ‘감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벼랑 끝까지 밀려날 수 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구’와 ‘담’이 서로를 지키려는 방식이다.
서로가 서로의 유일한 온기였고, 벼랑 끝에 내몰렸을 때 마지막까지 붙잡을 수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애쓰며 서로를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서로의 고통 가장 깊은 곳에는 닿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사랑이란 게 꼭 상대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닿지 못한 채 곁에 있는 것, 그저 함께 버티는 것이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남겨진 사람은 그 사랑을 증명하는 일을 혼자서 감당하게 된다.

 

 

 

기다림이 시간인지, 사람인지조차 모른 채로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고, 흐려지는 듯하다가도 더 깊이 스며든다.
감정과 기억, 존재와 부재가 뒤섞여 마음은 어지럽기만 하다.
그렇게 남은 것은 말 없는 혼란과 조용한 고통뿐이다.

 

책을 덮은 뒤에도 구와 담의 시간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담이 구를 생각하고, 구의 존재를 기억하고, 그 삶을 붙잡고 있는 방식은 너무나 절박하고도 고요했다.
읽다 보면 문장 하나하나가 마음에 깊이 박힌다.

아주 담백한 문장인데, 그 안에 담긴 감정은 결코 얕지 않다.
그것이 최진영 작가의 글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구의 증명'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우리는 과연 누군가를 온전히 알 수 있을까?
누군가를 증명할 수 있을까?
존재는 사라지면 정말로 끝일까?



이런 질문들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오랫동안 마음에 머물렀다.
그러다 문득, 사랑이란 건 결국 그 사람을 끝까지 잊지 않겠다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사랑은 끝까지 잊지 않겠다는 그 다짐 속에 남아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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